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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스토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과서나 세계 위인 전집에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인물이며, 1992년에 '149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영화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많은 논란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보물을 얻기 위해 대륙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탐욕에 눈이 멀어 원주민을 무참히 학살한 불편한 진실도 분명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이탈리아의 주요 항구 도시 제노바 출신으로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무역 거래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무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15세기 말에, 유럽에서는 금과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매우 많았습니다. 따라서 유럽의 상인들은 그런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역을 찾는 것을 원했습니다. 콜럼버스 역시 기존의 무역 항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무역 항로를 찾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대서양을 건너 동양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약 8년 동안의 준비 끝에 마침내 스페인 왕과 여왕의 후원을 얻게 됩니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산타 마리아호에 승선하여 서쪽으로 계속해서 항해를 했습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동안 오랜 바다 생활에 지친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콜럼버스의 굽힐 줄 모르는 결심과 의지로 약 3개월의 대서양 항해 끝에 마침내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티에라! 티에라! 즉, 육지다! 육지다!라고 외친 바로 그 순간이 세계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던 순간입니다. 1492년 10월 12일이 소위 말하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콜럼버스는 놀라운 발견에 대한 영광과 기쁨도 잠시 곧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는 신대륙에서 자신이 찾던 금이 없자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했고 일부는 노예로 삼아 유럽으로 끌고 왔습니다. 또한 유럽인들의 신대륙 이동으로 말미암아 신대륙에는 유럽의 질병이 퍼져서 수십만명의 원주민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금에 대한 탐욕이 결과적으로 정복과 착취라는 잔인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편한 진실 때문에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신대륙을 찾겠다는 그의 의지와 항해 능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원주민들에 대한 그의 잔인함과 모진 태도, 무모함, 탐욕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콜럼버스를 후원했던 스페인 왕과 여왕이 죽자, 콜럼버스의 영광도 끝났습니다. 그는 4차 항해를 마친 후 얼마 안 있어 5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동양으로 가겠다는 그의 큰 꿈과 의지는 그를 새로운 대륙으로 이끌었지만, 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가 그려 놓은 항로들은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발견하고 식민지화하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진출하게 되는 교두보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후로 세계는 극적으로 변하였습니다.

 

이상,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스토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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