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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어려울 때 용서 명언, 글귀 기억하기

 

용서 명언 용서 글귀

 

용서라는 덕목 만큼 고귀하면서 인생에서 꼭 필요한 덕목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해서는 쉽게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는 용서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어울려서 살다보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용서해야 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용서가 어려울 때, 우리는 용서와 관련한 명언이나 글귀를 기억한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용서보다는 복수하려는 경향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복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수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면에서 참으로 본이 되는 인물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입니다. 그는 평생을 인종 차별과 흑인 인권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러다가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사면 직후에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감옥 문을 나선 뒤에도 계속 그들을 증오한다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던 한 유대인 부인에게 독일에 대해 복수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는 복수에 대한 감정으로 내 인생을 파괴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내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수는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언젠가 수십 배의 쓴 맛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야말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복수입니다.

 

용서는 붙잡음이 아니라 놓아줌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서란,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의 무도한 행위를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놓아주고, 현재를 치유하고자 내가 내린 선택, 그것이 바로 용서다." 과거의 누군가의 죄로 인하여 현재의 활동이 마비된는 것은 파괴적인 생활입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복수심이 가득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란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것,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이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탈리아 철학자 세네카의 명언입니다. "너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너보다 강하거나 약했다. 그가 너보다 약했으면 그를 용서하고, 그가 너보다 강했으면 너 자신을 용서하라." 비슷한 의미로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자기계발의 선구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에게 해를 입히면 적보다 한 수 아래에 놓이게 된다. 복수를 하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용서를 하면 그보다 한 수 위에 자리한다." 복수보다 용서하는 것이 더 강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허버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건너야 할 다리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도 살다보면, 다른 사람의 용서를 구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 역시 용서 받기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는 하지만 잊을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합니다. 용서는 유효 기간이 지난 상품권처럼 한번 용서하면 깨끗이 잊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입니다.

 

용서하기 어려울 때, 이와 같은 용서 명언, 글귀를 기억하고 생각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숭고한 용서의 의미를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용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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